#1.
죽지 못해 살다가 시한부 인생을 선택한 사람과
죽음으로 뛰어듦에 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던 사람이 만나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갈 곳 없는, 그러나 강한 미움과 원망은 점차 사그라들고,
그리고 마침내 살고 싶게 만든다.
사람을 죽고 싶게 만들고, 또 살고 싶게도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 아닐까.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내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나를 잘 돌보고 챙기고 싶다.
#2.
3년 동안이나 알고 준비해 온 죽음인데,
막상 그날, 그 순간을 목전에 두니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역시 죽음 앞에 완벽한 준비라는 건 없나 보다.
그러니까 죽음을 미리 준비하려는 생각보다는
현재를 더 사랑하려는 생각으로 살아야지.
#3.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칭찬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
잊지 말자.
#4.
죽고 싶다는 지인을 위로하기 위해 공부하고, 집필을 시작한 책인데,
마침내 출판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는
결국 그 지인은 이 세상에 없었다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태어난 책인데
위로할 사람이 없어져 버린 거다.
그런 책을 내가 읽어버려서 어딘가 미안하고 마음이 복잡해져버렸다.
#
그날은 너무나 화창했다. 하늘이 놀랄 만큼 푸르렀다.
만약 스스로 죽을 날을 정할 수 있다면 나는 이런 날을 선택하겠다.
#
어떤 생물이든 잠잘 때는 무방비일 테지만 평소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는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어서
신기하게도 언제까지나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조심해서 가."
"오늘만은 조심해서 돌아갈게요."
#
평소 같았으면 행복해 보이는 가족에게 질투심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가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에도 전혀 불쾌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여자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며 마지막에 이치노세가 보여준 미소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일은 이제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도 조금은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
다리 위는 나와 이치노세 둘만의 세계다.
"...왜 자살 같은 걸 하려고 그래."
"약속을 깨야 나를 미워해 줄 거 같아서."
이치노세의 말뜻을 이해한 순간, 그녀가 미칠 듯이 애처롭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누운 채로 내 위에 안겨 있는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고는 등을 쓰다듬었다.
"그런 걸로 미워할 리 없잖아."
#
"저도 아이바 씨를 만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러니까, 자살하는 건 그만둘까 봐요."
그때 불꽃이 힘차게 쏘아 올려졌다. 지면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이 불꽃놀이를 즐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치노세의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이다 보니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서로 칭찬하고 감사의 말을 주고받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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