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어릴 때부터 선택은 빨리 못하지만 좋고 싫은 것,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의견은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춰진 나의 가치관 혹은 의견이 옳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주관이 강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와 다른 가치관이나 의견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역시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언제나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10년 동안 훈련하고 반복하면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누군가를 만나면서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설가도 아니고 토론가도 아닌데 내가 옳다고 믿는 무엇인가를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나와 상대를 할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일이지? 이래서는 진정한 "그럴 수도 있지"가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연습해온 "그럴 수도 있지"는 말로는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와 다른 의견을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여전히 내가 맞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진심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는데(무시), 내가 맞아"였다는 것을.
나는 옳다고 생각할지언정 그게 항상 맞는 것도 아니고,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내 의견을 나누는 것 이상으로 설득하고 바꾸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내가 이렇게 살면 되는 건데. 그동안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이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몰라서 이것을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관점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면 분명히 이 내게 공감하며 이 의견을 취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거야말로 오만이고 위선이며, 사이비 종교 같은 모습이 아닐까? 내가 이렇게 오만했었다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이것을 깨달아서 참 다행이고, 다 컸다고 생각했던 시점에 새로운 가르침을 준 나의 사람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는 감히 누군가를 설득시키려 하지도 않을 거고, 진심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거다. 그저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을 담담하게 꺼내놓고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비타민
- 잘하고 싶게 하지 마요.
요즘 반짝반짝한 내 인생에 깊고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는 유일한 이슈는 단연 '팀 빌딩'이다. 실무는 실무대로 실수 없이, 완벽을 지향하면서 리더로서 팀의 방향을 정하고 팀원들을 교육하고 때로는 다독이며 이리저리 치이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문득문득 포기하고 싶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돈을 받고 일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나 괴로웠다. 일로 자아실현을 한다는 원대한 꿈이나 내 인생을 갈아 넣겠다는 의지는 눈곱만큼도 없어도, 이왕이면 업무 시간에는 열심히, 잘해서 나 스스로에게도 멋진 모습이 되고 싶었고, 클라이언트에게는 감사와 후임들에게는 존경을 받고 싶었더랬다. 그랬는데 이제는 스트레스가 업무 시간에 가득 차다 못해, 업무 외 시간에까지 밀고 들어와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혈압이 오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는 부끄럽지만, 나의 심신의 안정을 위해 '대충 하자'며 나를 다독이던 참이었다.
그때 팀 막내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오며 수줍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이런 사랑스러운 사람. 그동안 우리 회사의 자타 공인 비타민은 나였는데. 돌아보니 나는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진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되었고, 여기, 내 바로 앞에 진짜 비타민이 있었다. 이 친구의 태도와 능력을 보니 내가 뭐라고 새삼 '잘 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이 친구는 내가 한 번 잘 키워볼까. 대단한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는 접어두고 이 친구 한 명을 성장시켜 보겠다는 목표로 올해를 버텨볼까. 대충 하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이거 하나는 내가 잘해봐야겠다.
내 인생도 참. 이렇게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감사하고 반짝반짝한 내 인생. 다치지 않되 계속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잘 운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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