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예술의 전당 전시회,
[초현실주의 거장들]에 다녀왔습니다.
예술의 전당 3층에 위치한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도슨트는 '큐피커'라는 오디오 가이드 앱으로 대신했습니다.
퇴근 후 예술의 전당을 방문하다 보니
관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저는 5섹션은 건너뛰었습니다.
모든 작품을 차분히 볼 수 없어
작품 앞에 섰을 때 어떠한 감상이나
마음의 울림이 있는 작품들 위주로 전시를 관람했고,
그런 작품들을 보며 느낀점들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미술적 지식이 전혀 없는 제가
온전하게 느낀 날 것의 감상 그 자체입니다.
모든 작품 이미지 출처는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홈페이지] 입니다.
고통 속에 녹아내린 타이어 같기도 하고,
저승사자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하고,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죽음을 먹는 자들, 디멘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조명의 방향에 따라 붓의 터치가 보이는 점이 좋았습니다.
구성이 빼곡하고 볼 거리가 많아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작품입니다.
작가가 2차 세계대전을 피해 피신했다가
멕시코로 돌아오자마자 그렸다는 이 작품은
이해하기는 난해했지만
심난한 가운데 희망을 꿈꾸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고,
실제로 작품 앞에 섰을 때 큰 울림이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볼록하게 입체감이 있는 나무 테두리 안에 그려진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마치 제가 작품 속의 일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커플에 제가 투영되어 보이기도 하고,
커플 뒤에서 앞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황량한 공간 가운데
역시 황량한 테이블을 각각 앞에 두고 있는 모습이
가슴을 가득 채운 뭔지 모를 공허함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공허한 와중에 이성은 청사진을 꿈꾸는 듯
머리의 새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이 울렁울렁,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정말 좋았던 작품이었는데,
작품 해설을 듣는 순간 좋았던 기분이 어지러워졌습니다.
이미 남편이 있는 갈라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와 여름을 함께 보내기 위해
갈라와 그녀의 남편을 초대했다는 달리.
결국 달리와 갈라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갈라가 남편과 이혼을 한 후
둘은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고.
영화처럼 풀어놨지만
결국 불륜이라는 소리였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달리는 갈라와 연인이 된 이후 그린 모든 그림의 한켠에
갈라의 이름을 새겼다고 하고,
자신의 아내이자 평생의 뮤즈로서
갈라와 여생을 함께 했다는데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둘도 없는 사랑을
타이밍이 나쁘게 뒤늦게 만난 거라면
이게 맞는 선택인 걸까? 혼란스러웠습니다.
애초에 그런 사랑이 아니면
함께 하기로 약속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결국 갈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리스크도 짊어지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의 인생을 볼모로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만 레이의 작품들은
발상의 과정이나 작명 등으로 하여금
작가의 결핍이 느껴지게 했습니다.
'이 작가 조금 꼬인 것 같은데'하는 생각에
시간을 들여 오래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콜라주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처음에는 큰 감흥이 없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비너스 상에 있는 서랍이
몸과 마음을 여는 서랍을 의미하는 것이며
인체가 정신분석학적으로만 열 수 있는 것이라는 데서
감명을 받은 달리의 작품이라는 작품 해설을 듣자
작품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고,
내 마음의 서랍은 몇 개일까,
또 내 연인의 마음의 서랍은 몇 개이며
어떻게 하면 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저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습니다.
이마의 주름, 눈썹,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고
우측 하단의 살아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의
손가락 마디 뼈처럼 보이는 흔적에
자꾸만 시선이 갔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뜨거운 감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가 겹쳐지면서
더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여행을 할 때에도
스페인 곳곳에서 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작품명이 스페인이라니,
살바도르 달리에게 스페인은 어떤 곳이었을까,
살바도르 달리의 스페인은 어떤 곳일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좌측의 작은 돌멩이 하나 하나에도 그려 넣은 그림자를 보고
굉장히 섬세하다고 생각했고,
우측의 플라멩코를 연상시키는 여인들과
사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 뒤로 보이는 건물은
알함브라 궁전인가 싶어 괜시리 반가웠고
자연스럽게 작품의 배경을
스페인 그라나다라고 생각하고 관람을 했습니다.
작품을 관람할 때는 몰랐는데
맙소사, 지금 다시 보니
작품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다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기괴했습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보고 그렸다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등을 돌리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점에
자꾸만 마음이 갔습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작품은 밝고 위트있는데
어쩌다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늘 부분의 물감이 말라서 갈라진 흔적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작품의 중앙에 있는 남성들이 보고 있는 것을
계속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중앙 아래 테이블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컵 3개는
무엇을 의미하며
누구의 컵일까,
누가 왜 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작품 해설을 통해 작품 속 테이블이
스페인 카다케스에 위치한
달리의 단골 카페 테이블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배경은
스페인 로사스 주변의 해안 지역이라고 하는데,
어디인지는 몰라도
그냥 스페인이 배경이라고 하니 좋았습니다.
작품 속 소년은 누구일까 궁금했고,
작은 돌멩이에도 그림자를 그려넣는 달리인데
소년에게만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작품을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했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곧 굴러갈 것만 같은 눈들과
꽤나 정교한 치아가 작품을 오래 보고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털이" 작품의 재료로 쓰였다는 글귀를 읽으니
더욱 소름이 끼쳤습니다.
꿈에 나올까봐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붓의 터치감과,
특히 그림을 가로지르며
물감을 뚫고 희미하게 보이는
스케치가 보이는 점이 상상력을 자극해서 좋았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침묵을 여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왜인지 눈이 안 떨어져서
구석구석 보았는데,
작품명은 "자유의 꿈"인데
오히려 자유와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억압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희망하기 때문에
작품명이 자유의 꿈이 된 것일까요?
작품명 때문인지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다들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시끄러운 소음일 뿐.
왠지 모르게 공감이 됐습니다.
작품의 크기도 컸고,
질감이 마음에 들어서
쉽게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구석구석 보려고 했는데
작품명이 왜 "선견지명"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알록달록 비비드하고 키치한 색감과
느껴지는 붓의 터치감,
초현실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구성.
새의 중심부가 마치 붕대로 감싸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새의 몸통 안에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질감이 마음에 들어 재료를 읽어 보니
"왁스 크레용"이라고 적혀 있어
왁스 크레용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예뻤습니다.
놀이공원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몇 편의 무거운 작품들을 관람하다가
이 작품을 만나니 마음이 들떴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도화지에 형형색색의 크레파스로 색칠을 한 후
검은색 크레파스로 도화지를 덮고
그 위에 이쑤시개로 그림을 그리던 기법이 떠올랐습니다.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림캐쳐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정리를 하면서
제가 우니카 취른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이 위에 흑연을 이용하여 그린
크리스티안스 토니의 그림들이 좋았습니다.
낙서처럼 편하게 그린 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두 번째로 첨부한 제목이 없는 작품은
보면서 영화 뮬란을 떠올렸습니다.
작가가 뮬란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긍정 광대의 생활'은 관람하면서 참 행복했는데,
제목 마저도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배우의 죽음!'은 어떤 작품을 보고 그렸을까
궁금했습니다.
작품이 크고 색감이 예뻐서 눈이 갔습니다.
너른 초원위에 난 길을
눈으로 따라 걷는 느낌도 났고,
작가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 느낌도 났습니다.
그러다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아...!'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슬펐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르네 마그리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작품명이 왜 '신사와 숙녀'일까
궁금해하면서 찬찬히 작품을 뜯어 보았습니다.
노란색 달걀이 의미하는 것이 신사이고
신사에게 등을 돌린 채 미소 짓고 있는 숙녀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보고 꿈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작품명이 '독'이라서
고개가 갸우뚱했습니다.
'독'이 의미하는 것이 poison이 아니라
pot이라면
독 안의 작은 마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의 작품명은 poison의 독이 맞았습니다.
여전히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가가 참 짓궂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만 레이.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상상을 해보려 애썼습니다.
뒤엉켜있는 석고상이 생각났습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왠지 별 것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 밖에
전시를 함께 관람한 동료들이
언급했던 작품들입니다.
특히 만 레이의 '내 첫사랑'은
저도 조금 더 느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어떤 감상이 일기 전 건너뛰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치며
사실 저는 [살바도르 달리] 전시에 가고 싶었는데
다양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좋아하는 작가도 몇 명 더 찾았구요.
평일 오후 6시쯤 방문했을 때 제 일행들을 포함해서
네 팀 정도가 관람중이었기 때문에
전시 환경은 굉장히 쾌적했고,
시간이 충분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예쁜 기념품들이 많았던 것도 재미의 한 요소였습니다.
저는 엽서 몇 장과 투명 포토카드, 노트를 한 권 샀는데
이렇게 정리하는 것만큼 좋은 기념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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