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 잔인하구나.
그런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분노했다.
특히 생후 2개월 미만의 강아지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집에서 달군 가위를 가지고
강아지의 귀를 자른 사람,
아픈 고양이를 고속버스 택배로 받았는데
아이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보고
"교환"한 사람,
자기 개는 자기가 옆에 있으면
죽을 만큼 아파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며
마취 없이 수술을 요청한 사람...
분노와 고통으로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나쁜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
사는 내내 모두 돌려받기를.
#2.
동시에 세상에 이런 수의사가 있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이렇게나 동물을 사랑해야
수의사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아니, 이렇게나 동물을 사랑하면
악마 같은 사람들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우려나.
#3.
"동물"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포유류 뿐만 아니라
조류, 파충류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동물", "더 큰 생명" 같은
잣대를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실려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스쳐 지나간
닭과 눈이 마주쳐 슬퍼하는 작가를 보며.
나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얼마큼 아파했나.
#4.
올해 1월부터 유엄빠에 정기후원을 하고 있다.
그러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유엄빠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각종 구호 및 치료 소식을
더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 했음에 안도했고,
정기후원 금액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
"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후트티, 황조롱이...
주변의 새들을 더 눈에 담고 아껴주고 사랑해야지.
#6.
그래서일까?
지구는 "내 것", "인간의 것"이 아니기에,
인간이 잠시 빌려 쓰는 것이기에,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를 위해
스테이플러 대신 클립을,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쓰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플로깅에 관심이 생겼다.
나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환경을 위해
나도 무언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
#7.
순수하게 기뻤다.
순수하게 슬펐다.
순수하게 사랑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에 눈 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순수했다.
#
진료실에서 우리는 개, 고양이에 대한 애틋함을 공유한다.
병원에 아픈 동물을 데려오는 이들은
적어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동물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사람이기 때문에
동물의 아픔을 더 공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
우리 집 반려견과 반려조는
지금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늘 가는 산책길인데도 처음 맞는 바람인 것처럼,
처음 맡는 냄새인 것처럼 집중한다.
뭐든 대충 훑어보고 다 안다고, 지루하다고 느끼던
나의 관성을 낯설게 만들고 부숴버린다.
산책 중 눈앞 나무 위에서 마주치는 쇠딱따구리,
탁 트인 밭 위의 바람을 타고 정지 비행 중인 황조롱이는 말해준다.
풀숲과 나무, 햇살과 바람에 경탄하라고,
오늘 보는 구름은 처음이고
지금 지나가는 바람은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이 삶은 영원하지 않다고.
그러면 정신없이 부유하던 '인간적인' 나의 생각들이
바닥으로 가만히 가라앉는다.
이젠 흘려보내도 될 것,
소중히 지켜야 할 것,
잘 모르겠으니 좀 더 기다려볼 마음들이
담담하게 모습을 그러낸다.
#
복댕아.
오늘 아빠가 병원에 오셨어.
널 생각하면서 많이 힘들어하시더라.
며칠째 잠도 못 잔다고 하셔서
네가 아팠던 게 아빠 때문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어.
미안해.
제일 아팠던 건 너인데
우리는 네가 떠난 후에도 우리의 슬픔만 생각하는구나.
오늘 밤에 아빠는 어제보다 편하게 주무실 거야.
꿈속으로 찾아가서 아빠와 행복한 시간 보내고,
그리고 영원히 편안하렴.
#
기억을 지우는 것이
고통도 행복도, 내 삶도 모두 지워야 하는 거라면
언젠가 과거의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누구에게나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가 되는 시간도 있다.
그럴 때는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아슬아슬한 얼룩이 아빠의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긴 밤이 지나갔다.
#
슬픔은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
나는 앵무새를 자취방으로 데려왔고
파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횟대에서 자고 있다가도
"삑! 삑!" 소리를 내며 날개를 펴고 바닥을 빙빙 돌았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매일 펼쳐지는 파닥이의 환영식을 볼 때마다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터 티티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고
왜 내가 그것을 미리 알아채지 못했는지.
기억을 되돌리려 해도 티티가 떠나기 전
마지막 며칠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
울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끅끅 작은 소리를 내며 울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엉엉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했다.
티티가 자주 있던 곳으로 걸어가니
횟대 밑에 길고 날렵한 깃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짙은 갈색과 흰색 무늬가 흩어진 깃이었다.
부드러운 결을 따라 손가락으로 깃을 매만졌다.
더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
티티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큰 소리가 들렸을 때 빠르게 올라가던 우관,
인공 잔디 사이의 딱정벌레를 응시하다가
한 번에 잡아채던 민첩한 긴 부리,
빠진 깃들이 반짝이는 새 깃들로 교체된 매끈한 꽁지깃,
횟대에서 기지개 켤 때 펼쳐지는 큰 날개...
모두 티티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인간인 내가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우주의 신비를 엿보게 해준 작은 새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렇게 나는 티티와 작별했다.
#
우리가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함께 사는 동물을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니까.
#
날개 잃은 앵무새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졌던
어렴풋한 연민은 첫 만남에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연민 대신 아름다운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싹텄다.
집에 가면 보고 싶고,
만나기 전에는 설레고,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그런 감정이 찾아왔다.
#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도 단호했고
그 표현에 있어서 어이없을 정도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면 마음껏 누리고
크게 기뻐했다.
사랑이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는데
그런 자기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늘 자신 있어 보였다.
#
나는 오랫동안 사랑이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를 바꾸려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
사랑이가 좋아서 함께 살기로 했을 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허상이다.
그나마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인데
그것조차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사랑이의 자해는 사랑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다.
삶의 모든 흔적들이 모여
그 존재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로 만든다.
그런 흔적들로 만들어진 이 앵무새도
나에게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
그 영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하는 과정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생각과 감정을 열어두면 마음이 흔들리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작은 망설임으로 시간을 끌다가
내 실수로 한 생명을 놓칠 수 있다.
#
한 생명이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와
엄마 젖을 빨고 있는 이 광경은
이전까지의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다.
꼬물거리는 작은 발가락이지만
끝없이 파고드는 동작이 약해 보이지 않는다.
#
나는 세상에 사람만 산다고 쉽게 착각하고 산다.
#
그동안 잘 버텨주었어.
다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
길 위에서 사는 것이 참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싫다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무섭다고 도망가거나 더럽다고 돌 던지는 사람도 있었겠지.
그래도 추운 겨울, 뜨거운 여름을 지나고도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나도 열심히 살게.
너처럼 하루하루 잘 살아볼게.
#
나만 사랑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도 나를 본다.
우울감이 밀려와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그런 밤이 있다.
그런 날은 평소와 달리 나에게 별다른 요구도 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동안 사랑이도 내 마음을 잘 읽게 된 것 같다.
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
어찌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치킨도 마음이 있었다.
행복한 상태를 좋아하고,
고통과 통증에 괴로워 하는 마음.
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마음 말이다.
#
이내 병아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노란 솜털 안에 있던 생명이 빠져나가는 걸
손바닥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느꼈다.
아름다움이 이렇게 딱딱해진 몸 안에 갇히는구나.
생명이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죽음이 낙인처럼 내 손바닥에 각인되었다.
#
나중에 여유가 될 때까지 좀 더 미뤄두자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그런 여유는 늘 오지 않게 마련이다.
#
우리가 개들의 복종만 사랑해온 것은 아닌가
씁쓸하다.
#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내고 나면
내가 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달라진 내가 보는 세상도
꼭 그만큼 커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
학생 때는 너구리 머리 위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만 크게 보였지만,
지금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깜돌이가 더 크게 보였다.
처치를 마무리할 때즈음,
내가 갖고 있던 구더기에 대한 공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내가 다룰 수 있는 감정으로 변해 있었다.
공포와 혐오는 대상에 대해 모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징그럽고 무서우니까 알려는 노력도 하기 싫고
그럴수록 그 대상은 추상화되고 거대해진다.
그리고 나를 압도한다.
#
보려 하지 않으니
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의도적인 무관심에 비해
칠성이의 고통은 너무나 새생했다.
나의 무관심이 칠성이의 고통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
사람이 유리에 부딪히면
투명한 유리의 위험을 배울 기회가 되지만,
새들에게 다음은 없다.
새들에게 유리는 죽음으로 가는 문이다.
#
내가 개입할 수 없는 거대한 신비,
그 자연의 풍광 속에 있으면
나는 인간의 역사 훨씬 이전부터
이 세상에서 수많은 생명이 생겨나고 사라져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는 나도 사라진다는 것,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유한함을 느낀다.
그것이 아마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 느끼는
슬픔의 근원인 것 같다.
그리고 한없이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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